COMFORT ROOM 12

진정한 위로함 받기

모든 소망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한 위로는 성도의 모든 고통과 절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 결론이 아니라는 복음의 중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고통을 멀리서 설명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부활은 죽음과 실패와 절망이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소망을 배웁니다. 이 위로는 단순한 긍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이 오늘의 눈물 속에서도 새 생명의 근거가 된다는 가장 강한 복음의 고백입니다.

MOVE THROUGH 12 ROOMS

다른 위로 주제 보기

마음이 다른 자리로 움직일 때, 다른 위로의 방도 천천히 열어보세요.

30 DEVOTIONS

십자가와 부활 묵상

빠르게 소비하지 말고, 오늘 내 마음에 가장 가까운 제목 하나를 오래 바라보십시오.

30개 표시
331

십자가 앞에서 다시 숨을 쉴 때

십자가 앞에서 다시 숨을 쉴 때, 마음은 쉽게 자기 자신을 정죄하거나 상황의 무게에 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시간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도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위로는 문제를 대충 덮는 말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초대하는 음성입니다. 오늘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고 한 걸음만 다시 내딛으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위로는 상황이 즉시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생각과 말과 작은 선택에 옮길 때, 무너진 마음은 다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332

부활의 소망이 희미해질 때

부활의 소망이 희미해질 때, 성도는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짧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지며, 믿음의 언어보다 한숨이 먼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진리는 그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품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근거를 주십니다. 위로는 괜찮은 척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아픈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가져오라는 초대입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강해지려 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작은 믿음의 발걸음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333

절망이 마지막처럼 느껴질 때

절망이 마지막처럼 느껴질 때, 그 아픔은 신앙이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더 깊이 아프고, 말씀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더 크게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성도의 탄식까지 들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고, 부활은 절망이 마지막 결론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낙심을 최종 판결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일하고 계시며, 당신을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다.

334

예수님의 고난이 내 고통을 품을 때

예수님의 고난이 내 고통을 품을 때, 마음이 불편할 때 우리는 빨리 벗어날 방법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도의 눈물과 기다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상황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도 주님께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를 끝까지 견디는 것도 믿음의 열매이며, 주님은 그 견딤을 기억하십니다.

335

죽음보다 강한 생명을 바라볼 때

죽음보다 강한 생명을 바라볼 때, 이 문제 앞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인물들도 두려워했고 울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씨름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연약한 자리에서 자신의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위로는 문제를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작은 기도 하나, 짧은 순종 하나로 충분합니다. 낙심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면 성령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공급하십니다.

336

십자가가 나의 죄책감을 덮을 때

십자가가 나의 죄책감을 덮을 때, 마음은 쉽게 자기 자신을 정죄하거나 상황의 무게에 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시간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도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위로는 문제를 대충 덮는 말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초대하는 음성입니다. 오늘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고 한 걸음만 다시 내딛으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위로는 상황이 즉시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생각과 말과 작은 선택에 옮길 때, 무너진 마음은 다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337

부활이 오늘의 낙심을 깨울 때

부활이 오늘의 낙심을 깨울 때, 성도는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짧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지며, 믿음의 언어보다 한숨이 먼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진리는 그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품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근거를 주십니다. 위로는 괜찮은 척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아픈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가져오라는 초대입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강해지려 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작은 믿음의 발걸음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338

하나님이 고통 속으로 오셨음을 믿을 때

하나님이 고통 속으로 오셨음을 믿을 때, 그 아픔은 신앙이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더 깊이 아프고, 말씀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더 크게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성도의 탄식까지 들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고, 부활은 절망이 마지막 결론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낙심을 최종 판결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일하고 계시며, 당신을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다.

339

눈물 속에서도 복음을 붙들 때

눈물 속에서도 복음을 붙들 때, 마음이 불편할 때 우리는 빨리 벗어날 방법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도의 눈물과 기다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상황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도 주님께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를 끝까지 견디는 것도 믿음의 열매이며, 주님은 그 견딤을 기억하십니다.

340

예수님의 상처가 나의 상처를 만질 때

예수님의 상처가 나의 상처를 만질 때, 이 문제 앞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인물들도 두려워했고 울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씨름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연약한 자리에서 자신의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위로는 문제를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작은 기도 하나, 짧은 순종 하나로 충분합니다. 낙심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면 성령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공급하십니다.

341

무너진 자리에서 새 생명을 배울 때

무너진 자리에서 새 생명을 배울 때, 마음은 쉽게 자기 자신을 정죄하거나 상황의 무게에 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시간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도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위로는 문제를 대충 덮는 말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초대하는 음성입니다. 오늘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고 한 걸음만 다시 내딛으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위로는 상황이 즉시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생각과 말과 작은 선택에 옮길 때, 무너진 마음은 다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342

십자가 사랑이 충분함을 믿을 때

십자가 사랑이 충분함을 믿을 때, 성도는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짧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지며, 믿음의 언어보다 한숨이 먼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진리는 그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품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근거를 주십니다. 위로는 괜찮은 척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아픈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가져오라는 초대입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강해지려 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작은 믿음의 발걸음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343

부활 신앙으로 오늘을 견딜 때

부활 신앙으로 오늘을 견딜 때, 그 아픔은 신앙이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더 깊이 아프고, 말씀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더 크게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성도의 탄식까지 들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고, 부활은 절망이 마지막 결론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낙심을 최종 판결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일하고 계시며, 당신을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다.

344

끝난 줄 알았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때

끝난 줄 알았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때, 마음이 불편할 때 우리는 빨리 벗어날 방법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도의 눈물과 기다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상황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도 주님께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를 끝까지 견디는 것도 믿음의 열매이며, 주님은 그 견딤을 기억하십니다.

345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주님을 바라볼 때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주님을 바라볼 때, 이 문제 앞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인물들도 두려워했고 울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씨름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연약한 자리에서 자신의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위로는 문제를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작은 기도 하나, 짧은 순종 하나로 충분합니다. 낙심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면 성령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공급하십니다.

346

복음이 내 삶의 마지막 말이 될 때

복음이 내 삶의 마지막 말이 될 때, 마음은 쉽게 자기 자신을 정죄하거나 상황의 무게에 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시간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도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위로는 문제를 대충 덮는 말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초대하는 음성입니다. 오늘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고 한 걸음만 다시 내딛으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위로는 상황이 즉시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생각과 말과 작은 선택에 옮길 때, 무너진 마음은 다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347

십자가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은혜

십자가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은혜, 성도는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짧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지며, 믿음의 언어보다 한숨이 먼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진리는 그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품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근거를 주십니다. 위로는 괜찮은 척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아픈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가져오라는 초대입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강해지려 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작은 믿음의 발걸음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348

부활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소망

부활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소망, 그 아픔은 신앙이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더 깊이 아프고, 말씀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더 크게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성도의 탄식까지 들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고, 부활은 절망이 마지막 결론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낙심을 최종 판결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일하고 계시며, 당신을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다.

349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음을 믿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음을 믿을 때, 마음이 불편할 때 우리는 빨리 벗어날 방법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도의 눈물과 기다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상황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도 주님께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를 끝까지 견디는 것도 믿음의 열매이며, 주님은 그 견딤을 기억하십니다.

350

죄와 수치가 더 이상 주인이 아닐 때

죄와 수치가 더 이상 주인이 아닐 때, 이 문제 앞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인물들도 두려워했고 울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씨름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연약한 자리에서 자신의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위로는 문제를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작은 기도 하나, 짧은 순종 하나로 충분합니다. 낙심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면 성령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공급하십니다.

351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붙들 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붙들 때, 마음은 쉽게 자기 자신을 정죄하거나 상황의 무게에 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시간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도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위로는 문제를 대충 덮는 말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초대하는 음성입니다. 오늘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고 한 걸음만 다시 내딛으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위로는 상황이 즉시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생각과 말과 작은 선택에 옮길 때, 무너진 마음은 다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352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다시 고백할 때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다시 고백할 때, 성도는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짧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지며, 믿음의 언어보다 한숨이 먼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진리는 그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품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근거를 주십니다. 위로는 괜찮은 척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아픈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가져오라는 초대입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강해지려 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작은 믿음의 발걸음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353

고난의 금요일을 지나 부활의 아침을 기다릴 때

고난의 금요일을 지나 부활의 아침을 기다릴 때, 그 아픔은 신앙이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더 깊이 아프고, 말씀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더 크게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성도의 탄식까지 들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고, 부활은 절망이 마지막 결론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낙심을 최종 판결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일하고 계시며, 당신을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다.

354

내 삶의 무덤 같은 자리에 빛이 비칠 때

내 삶의 무덤 같은 자리에 빛이 비칠 때, 마음이 불편할 때 우리는 빨리 벗어날 방법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도의 눈물과 기다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상황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도 주님께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를 끝까지 견디는 것도 믿음의 열매이며, 주님은 그 견딤을 기억하십니다.

355

십자가 아래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때

십자가 아래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때, 이 문제 앞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인물들도 두려워했고 울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씨름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연약한 자리에서 자신의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위로는 문제를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작은 기도 하나, 짧은 순종 하나로 충분합니다. 낙심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면 성령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공급하십니다.

356

부활의 능력이 약한 나를 붙들 때

부활의 능력이 약한 나를 붙들 때, 마음은 쉽게 자기 자신을 정죄하거나 상황의 무게에 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 시간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도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위로는 문제를 대충 덮는 말이 아니라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초대하는 음성입니다. 오늘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고 한 걸음만 다시 내딛으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위로는 상황이 즉시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의 생각과 말과 작은 선택에 옮길 때, 무너진 마음은 다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357

복음이 다시 나를 살릴 때

복음이 다시 나를 살릴 때, 성도는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짧아지고 생각은 복잡해지며, 믿음의 언어보다 한숨이 먼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진리는 그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품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설 근거를 주십니다. 위로는 괜찮은 척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아픈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가져오라는 초대입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강해지려 하지 말고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주님은 작은 믿음의 발걸음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358

예수님 안에서 모든 위로가 완성될 때

예수님 안에서 모든 위로가 완성될 때, 그 아픔은 신앙이 약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기 때문에 더 깊이 아프고, 말씀대로 살고 싶기 때문에 더 크게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성도의 탄식까지 들으시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하나님 밖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고, 부활은 절망이 마지막 결론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낙심을 최종 판결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직 일하고 계시며, 당신을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다.

359

오늘도 십자가와 부활로 살아갈 때

오늘도 십자가와 부활로 살아갈 때, 마음이 불편할 때 우리는 빨리 벗어날 방법부터 찾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도의 눈물과 기다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 상황이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도 주님께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를 끝까지 견디는 것도 믿음의 열매이며, 주님은 그 견딤을 기억하십니다.

360

마지막 위로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할 때

마지막 위로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할 때, 이 문제 앞에서 자신을 실패자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인물들도 두려워했고 울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씨름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연약한 자리에서 자신의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위로는 문제를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작은 기도 하나, 짧은 순종 하나로 충분합니다. 낙심의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면 성령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공급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