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충 믿지 않겠습니다
믿음은 흐릿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반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능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준비 없는 예배, 깊이 없는 말씀, 전략 없는 사역, 질서 없는 삶, 책임 없는 기도, 열매 없는 열심을 더 이상 믿음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이제 무너진 성벽을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세우십시오.
성경을 읽지만 삶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지만 결정은 세상의 방식으로 합니다. 성경 지식은 있지만 성경적 사고가 없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은 말씀이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말씀 없는 결정은 어둠 속에서 걷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말씀을 정보로 소비하고 있는가, 삶의 기준으로 복종하고 있는가?
오늘 한 장을 읽고, 반드시 한 가지 순종으로 연결하십시오.
기도는 마지막 수단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응급 처치가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먼저 계산하고, 막히면 그때 기도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묻기 전에 이미 내 방식으로 결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루 첫 10분을 하나님께 묻는 시간으로 고정하십시오.
바쁘다고 말하지만 사명에는 시간을 내지 않습니다.
급한 일에 끌려다니며 중요한 일을 잃어버립니다.
에베소서 5장 15~16절은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합니다.
내 시간표는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가?
하루 시간 사용을 기록하고,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낭비를 제거하십시오.
돈을 벌지만 다스리지 못합니다.
소비는 감정이 결정하고, 헌신은 남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합니다. 재정은 마음의 방향을 드러냅니다.
내 재정은 하나님께 맡겨진 것인가, 내 욕망을 섬기는 도구인가?
수입, 지출, 나눔, 헌신을 기록하고 재정의 주권을 하나님께 다시 고백하십시오.
말로 상처를 주고, 침묵으로 벌을 주며, 용서를 미룹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복음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먼 사람에게는 신앙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은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것처럼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오늘 한 사람에게 미뤄둔 사과, 감사, 용서의 말을 하십시오.
가정예배는 사라지고, 신앙교육은 교회에만 맡겨졌습니다.
부모는 바쁘고, 자녀는 혼자 디지털 세상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6~7절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작은 성전인가, 세상의 흐름에 방치된 공간인가?
주 1회 15분이라도 가정 말씀 나눔을 시작하십시오.
일터에서는 신앙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직, 성실, 탁월함, 책임, 섬김이 사라지고 주일의 믿음과 평일의 삶이 분리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은 무슨 일을 하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고 말합니다.
나는 일터에서 복음을 증언하는가, 신앙을 숨기고 생존만 하고 있는가?
오늘 맡은 일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께 하듯 하십시오.
몸은 피곤에 방치되고, 습관은 중독에 끌려갑니다.
수면, 식사, 미디어, 성, 감정, 언어가 통제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은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몸은 사명의 도구입니다.
나는 내 몸과 습관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오늘 하나의 해로운 습관을 끊고 하나의 거룩한 루틴을 세우십시오.
복음보다 뉴스가 마음을 지배하고, 말씀보다 알고리즘이 생각을 훈련합니다.
분별 없는 정보가 영혼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내 생각은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있는가, 세상 알고리즘으로 형성되고 있는가?
하루 한 번, 내가 오늘 무엇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는지 점검하십시오.
살아는 있지만 왜 사는지 모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보냄 받은 자라는 정체성은 희미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냄 받은 자입니다.
나는 생존을 위해 사는가, 부르심을 따라 사는가?
내가 받은 은사 하나를 누구를 살리는 데 사용할지 결정하십시오.
예배는 함께 드리지만 삶은 연결되지 않습니다.
성도는 관객이 되고, 목회자는 모든 짐을 혼자 집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은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여 몸을 자라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관객 집단인가, 서로를 세우는 그리스도의 몸인가?
교회 안에서 내가 소비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감당할 한 가지를 찾으십시오.
십자가보다 프로그램이 커졌습니다.
은혜보다 성과가 커졌고, 예수보다 사람의 이름이 커졌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중심에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명한가?
모든 훈련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다시 두십시오.
말씀을 읽는 것을 넘어 말씀으로 생각하십시오.
성경을 지식으로 축적하지 말고, 판단과 선택과 관계와 일터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매일 한 장을 읽되, 반드시 한 가지 순종으로 연결하십시오.
말씀 없는 열심은 방향 없는 질주입니다.
기도를 응급실이 아니라 지휘본부로 회복하십시오.
문제 발생 후 기도하지 말고, 결정 전에 기도하십시오.
하루 첫 10분을 하나님께 묻는 시간으로 고정하십시오.
기도한 사람은 더 정직하게 준비하고 더 충성스럽게 실행해야 합니다.
시간은 영성의 증거입니다.
당신이 반복해서 시간을 쓰는 곳이 당신의 실제 예배 대상입니다.
하루 시간 사용을 기록하고,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낭비를 제거하십시오.
영성은 시간표에서 드러나고, 믿음은 반복되는 습관에서 증명됩니다.
돈은 마음의 방향을 드러냅니다.
소비를 감정이 아니라 청지기 정신으로 다스리십시오.
수입, 지출, 나눔, 헌신을 기록하고 재정의 주권을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재정의 무질서는 마음의 무질서를 드러냅니다.
복음은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적용되어야 합니다.
말, 태도, 용서, 경청, 화해를 다시 세우십시오.
오늘 한 사람에게 미뤄둔 사과, 감사, 용서의 말을 하십시오.
가까운 관계에서 적용되지 않는 복음은 아직 삶이 된 복음이 아닙니다.
가정은 가장 작은 교회입니다.
자녀의 영혼을 세상 문화에만 맡기지 말고, 부부의 대화를 방치하지 마십시오.
주 1회 15분이라도 가정 말씀 나눔을 시작하십시오.
다음 세대의 성벽은 가정에서 먼저 세워집니다.
일터는 신앙이 시험되는 현장입니다.
정직, 성실, 탁월함, 책임, 친절, 공의가 복음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맡은 일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께 하듯 하십시오.
일터에서 보이지 않는 믿음은 아직 월요일의 복음이 아닙니다.
몸은 사명의 도구입니다.
무너진 수면, 중독된 미디어, 통제되지 않는 욕망, 방치된 건강을 회개하십시오.
오늘 하나의 해로운 습관을 끊고 하나의 거룩한 루틴을 세우십시오.
몸을 방치하면서 사명을 오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아무 정보나 통과하는 열린 성문으로 두지 마십시오.
말씀으로 생각을 지키고, 진리로 분별력을 세우십시오.
하루 한 번, 내가 오늘 무엇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는지 점검하십시오.
생각의 성문을 지키지 않으면 영혼의 도시가 점령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생존자가 아니라 보냄 받은 자입니다.
직업, 은사, 경험, 고통, 관계를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재배치하십시오.
내가 받은 은사 하나를 누구를 살리는 데 사용할지 결정하십시오.
사명 없는 바쁨은 거룩한 열매를 만들지 못합니다.
교회는 관객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지체가 서로 세우는 몸입니다.
소비자 신앙을 버리고, 책임 있는 지체로 서십시오.
교회 안에서 내가 소비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감당할 한 가지를 찾으십시오.
성도는 소비자가 아니라 재건자입니다.
모든 성벽의 중심은 복음입니다.
십자가가 흐려지면 모든 성벽은 율법주의가 됩니다.
모든 훈련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다시 두십시오.
은혜가 사라지면 모든 질서는 정죄가 되고, 부활이 사라지면 모든 훈련은 자기계발이 됩니다.
은혜를 핑계로 삼지 마십시오. 무능을 겸손으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무계획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다시 선언하십시오.
믿음은 흐릿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반응하는 삶입니다.
은혜는 게으름을 덮는 말이 아니라 거룩한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혼란의 영이 아니라 진리와 질서와 절제의 영이십니다.
기도한 사람은 더 정직하게 준비하고 더 충성스럽게 실행해야 합니다.
겸손은 실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실력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사명은 감동이 아니라 구조와 훈련과 지속성으로 세워집니다.
무너진 성벽 앞에서 한탄만 하지 않고 오늘 한 가지 순종을 시작하겠습니다.
성도만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강단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리더십도 무너질 수 있고, 목회 전략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지 않고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헌신만 강조하는 것, 다음 세대를 이해하지 않고 믿음 없다고 비판하는 것, 방향 없이 행사만 반복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영적 리더십의 성벽이 무너진 증거입니다.
당신은 예배 출석자로만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성령의 전이고, 일터의 파송자이며,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지휘본부입니다.
사랑은 즉흥성이 아니라 준비된 섬김으로 더 깊어집니다.
모든 훈련과 질서와 성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페이지를 읽고 감동만 받지 마십시오. 감동은 성벽을 세우지 않습니다. 결심만으로도 성벽은 세워지지 않습니다. 성벽은 실제 순종으로 세워집니다.